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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interview-e] 송해섭, 최순철 선교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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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24.06.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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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복음화 위해 목회 사직하고, 자급사역자로 헌신
송해섭, 최순철 선교사 부부는 네팔 복음화를 위해 목회를 사직하고, 자급사역자로 봉사하고 있다.

송해섭, 최순철 선교사 부부는 20년간 목회자로 일하다 소속 합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네팔로 떠났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선교사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목사로서 그가 마지막으로 섬기던 교회는 안산교회다. 성도와 구도자들을 데리고 네팔로 트레킹을 간 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으로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다.


2010년 초, 네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카핑이라는 지역에 머무르며 선교사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거주할 집이 없었다. 현지인들에게 부탁해 집 바깥의 남는 공간에 침낭만이라도 깔고 잠만 자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이 부엌을 내주면 부엌에서, 외양간을 내주면 외양간에서 침낭을 깔고 잠을 잤다. 거의 노숙에 가까운 생활이었다. 


낯선 오지에서 사는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2~3주에 한 번은 카트만두에 가서 쌀과 부식을 사와야 했고 목욕도 그때만 할 수 있었다. 장 본 것을 들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비포장도로를 4시간이나 달려야 하는 먼 거리지만 앉을 자리는커녕 아슬아슬 지붕 위에 앉은 채로 올 때도 많았다. 하차 후에도 무거운 짐을 들고 1시간 반 정도 산길을 걸어 올라오면 하루가 꼬박 걸렸다. 온몸이 녹초가 됐다. 


그러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며칠, 몇 달간 이집 저집 신세를 지며 사는 동안 부부가 아침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레 보게 됐다. 그리고 한두 명씩 같이 예배를 드리는 일이 일어났고, 사람이 점점 많아져 교회를 건축하기까지 이르렀다. 2013년, 이들 부부가 네팔에서 처음으로 건축한 ‘카핑교회’의 시작이다. 


송해섭 선교사는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이 기간에 우리 부부에게 선교의 방향과 비전을 보여주시고 교육시키셨다. 덕분에 교회를 건축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회고하며 “자급사역을 하면서 평신도들이 교회를 위해 드리는 헌신이 얼마나 값진 마음이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 크다며 현지 상황을 고스란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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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는 1960년 재림기별이 들어갔다. 이미 오래 전 학교가 세워졌지만 지도자들의 비전 결여, 부정직, 재정관리 소홀로 교사 수급과 양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힌두교학교로 전락했다. 네팔위생병원도 직원이 400명이나 있지만 95% 정도가 힌두교인이어서 의료사업을 통한 선교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던 중 2015년 강진이 일어났다. 교인 가정 170여 곳이 피해를 입었다. 아드라 지원금 5000만 원과 그동안 모인 후원금 6000만 원으로 그 많은 집을 수리해 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네팔에 처음 트레킹 왔을 때 산속에 누군가 지어 둔 의료시설이 있던 것이 떠올랐다. 병원을 지어 지속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선교 기반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답차’라는 지역에 450평의 부지를 구입해 치과와 내과 클리닉, 게스트룸 3개를 마련했다. 


권마태 장로가 치과 장비를, 신용석 장로와 신용호 장로 형제가 내과 진료기구를 준비해 주어 2016년부터 의료선교와 고아원 사업을 시작했다. 무료진료봉사를 오는 SDA의사협회를 비롯한 봉사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도 있게 됐다. 봉사자들의 경험담을 듣고 감동 받은 성도들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그렇게 두 번째 교회인 ‘답차교회’를 건축하면서 선교본부를 갖추고 지역에 정착하게 됐다. 


송해섭 선교사는 “한국 재림교회의 성장에서 볼 수 있듯, 의료와 교육사업을 통해 선교의 길이 열린다. 하나님께서는 네팔 선교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도록 오래 전부터 준비하셨다. 충청 밀알선교단(단장 김광윤)과 호남 평신도지도자교회협의회(회장 우재하)가 이끄는 ‘네팔사랑선교회’도 병원과 고아원, 6개의 교회를 건축하기까지 수 차례 방문해 큰힘을 실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후원한 이들의 헌신에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장진옥 집사(충청 살렘동산교회)가 보내준 후원금으로 350평의 학교 부지를 마련했는데 얼마 후에는 신종우 장로(충청 지량리교회)가 3억 원을 보냈다. 20년 전부터 교육사업에 드리고자 모아 온 돈이란다. 고 백흥만 장로(동중한 봉두리교회), 충청 살렘동산교회 후원으로 수업에 필요한 책걸상, 교무실 비품 등을 마련했다.


온정은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미국 강영순 집사(글렌데일교회)가 5만 달러를 후원해 그레이스홀(강당)을 건축했다. 미국 로마린다교회의 지원으로 세미나실도 갖췄다. 미국에 거주하는 안천수 은퇴목사와 오아시스 가족 선교회가 10만 달러를 보태 신학대학 건축 자금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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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시작한 건축은 올 3월 23일 완료됐다. 이튿날 준공예배를 드린 ‘진선미아카데미’에는 4월 16일 현재 280명이 공부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10학년(고등학생)까지 이곳에서 삼육교육을 받는다.


송 선교사는 “단 6개월 만에 부지 구입과 학교 건축에 필요한 5억 원이 마련되고 건축을 완공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이기에 가능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CMM과 AMM, 1000명선교사 활동이 장기선교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것도 필요하다. 선교사업은 기관중심이 아닌 교회중심으로 이뤄져야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부부는 “이 학교에서 재림기별을 배우며 자란 아이들은 이 학교 교사로, 이 지역 목회자로 양성될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이들이 졸업 후에도 재정 안정을 이루며 교회 안에서 주의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학교’와 ‘신학대학’도 건축 중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한글과 영어, 음악, 컴퓨터 등을 가르칠 수 있는 봉사자다.


송 선교사는 1년에 8~9개월을 네팔에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집 짓는 일을 하면서 항공료와 선교지에서 쓸 생활비를 손수 마련한다. 감동받은 성도들도 헌신의 마음을 보내온다. 어떤 이는 암 진단금을, 어떤 이는 전단지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은 수입을 드렸다. 아흔을 앞둔 한 노인은 ‘살 만큼 살았으니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며 나눔의 손길을 펼쳤다. 


부부는 이제 누군가 자신의 젊음을, 혹은 은퇴 후의 삶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 네팔 선교지로 뛰어올 것을 믿는다. 그리고 각자의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든 주님의 부르심에 응할 것을 확신한다. “그제야 끝이 올”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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